안녕하세요! 한국의 역사 교양을 갖출 내용을 포스팅합니다.^^
과거 한국인의 노동 중 기술과 제품에 관해서 서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속공예란 서민사회에서 이름 없는 기술자들의 손으로 가식 없이 만들어져서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쓰여지는 물품들을 말합니다. 민속공예엣 감상적 또는 미적 차원의 예술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이번에는 생활을 중시하는 공업 쪽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공예의 특징은 자연과의 친화에 있습니다. 돌, 나무, 흙 등의 자연물을 이용한 제품이 많고, 자연의 형태와 색상을 재현시키는 물품이 많으며, 자연의 미가 돋보이는 소박하고 검소한 조형물이 많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삼국시대부터 기와를 만드는 장인을 와박사라 불렀을 만큼 장인을 높게 대우했습니다. 삼국유사의 탈해왕은 자신의 조상이 대장장이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삼국사기의 신라의 박혁거세도 제철기술자라고 되어있습니다. 삼국시대에 불교사원들이 수공업기술자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들이 제조하는 불교수공예품이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삼국시대 수공업자들은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6~7세기에 접어들며 관영수공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노비 신분으로 전락했고, 민영수공업 종사자들은 사회적으로 천대받았습니다. 고려시대 12세기 전후까지는 기술자의 대우가 괜찮았으나, 수공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들은 소라는 천민집단 거주지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고려의 장인계층은 고려의 멸망 후 유민으로 전락했고, 양수척이나 재인들처럼 백정 취급을 받았습니다. 조선의 수공업 기술자들은 봉건체제 하에 국가의 관리를 받으며 지배층의 수요와 공급에 맞춰 물건을 생산했습니다. 16세기 이후 관영수공업은 특수물품을 제외하고는 폐쇄상태에 이르렀고, 사기업주인 개인기술자들이 고용받아 물품을 생산하는 체제로 변해갔습니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를 통해 조선의 경성 내의 목수와 미장이를 비롯하여 장인은 모두 합하여 수백 명에 지나지 않고, 이들은 관아에 소속되어 있어 쉽사리 일을 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삼국시대 민영수공업 생산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되는 삼베, 모시, 명주 등의 직물류였습니다. 고려시대에도 마직, 저직, 견직 등의 직조류가 발달하였습니다. 우리의 석기 용품은 사적인 생활용품이 많았습니다. 한국인은 선사시대부터 돌을 다듬는 기술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맷돌은 구석기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래됐으면서도 기본적인 생활도구였습니다. 돌절구는 돌의 속을 파서 곡식을 넣고 찧거나 빻는데 쓰였습니다. 목판은 떡, 과일, 마른 음식을 담아두던 그릇이고, 찬합은 밥, 반찬, 술안주 등을 담아 전수하거나 운반하던 그릇이었습니다.
함지박은 통나무 속을 파서 만든 음식물을 담는 그릇이고, 이남박은 함지박의 하나로 둥그런 안쪽에 여러 줄의 골이 나 있어 쌀 같은 것을 씻어 일 때 쓰던 그릇이었습니다. 사찰에서 쓰는 바리때는 목제식기류의 본보기가 됩니다. 바가지는 서민들이 박을 타서 가장 손쉽게 만들어 쓰던 다목적용 그릇입니다. 우리의 전통 소반은 요즈음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이는데, 무늬가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한 나뭇결이 살아있어 집안 여러 곳에 잘 어울립니다. 황해도의 해주반, 전남의 나주반, 경남의 통영반은 전국의 3대 소반이고, 호족반이나 화형반 등도 있습니다.
한민족은 아연을 기술적으로 잘 활용하여 세계적인 청동기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다뉴세문경이라는 청동거울이나 성덕대왕신종을 비롯한 범종이 이를 증명합니다. 삼국시대의 금관제작은 금속가공 기술의 꽃입니다. 우리는 일찍이 제철기술도 탁월했습니다. 유럽에서 선철이나 강철이 널리 사용된 것은 14세기경 이후지만 고조선 사람들은 기원전 수백 년 전에 연철과 선철을 제련하고 강철도 제련하여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562년경 가야는 철을 다룰 줄 모르던 일본이나 중국 등지에 수출할 정도로 철의 제조에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가야는 훌륭한 철갑옷을 보유했고, 오늘날 리베팅(riveting)기법이라 부르는 철판연접기술을 그들은 개발했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철유전을 비롯한 각종 관립 전문제작소를 두어 수공업을 국가적 규모로 확대하여 금속가공기술이 한층 발전했고, 고려시대에는 마구류와 용기류 제작의 기술도 뛰어났습니다. 또한 이 때에 장신구는 쇠퇴하는데 금은상감을 한 구리거울, 범종, 향로 등의 불교의식구를 중심으로 한 금속공예가 발전했고, 합금기술의 발달로 금속활자나 금속화폐가 주조되었습니다. 주조기술과 담금기술이 발달해 여러 분야의 금속제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금속가공기술이 활발했고, 금속공예 기술자들의 고도의 예술성이 돋보였습니다. 장도, 비녀와 같은 장신구의 제작과 목가구를 장식하는 금속제품이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철은 각종 무기나 연장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고, 주물이 가능한 무쇠로는 생활도구를, 시우쇠로는 여러 생활용품을 만들었습니다.
중국은 사기그릇이 주종이고, 일본은 나무그릇이 주종을 이루는데, 우리만이 유기제품을 병행했습니다. 구리와 주석 및 아연 등으로 만든 놋그릇, 즉 유기는 우리만이 가졌던 합금기술이 빚어낸 쾌거였습니다. 합금이 쉬워지는 납을 넣는 것과 중금속이 들어가는 스테인리스그릇을 생각하면 우리 조상들의 합금 수준과 방짜쇠를 만든 놋그릇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습니다.
흙으로 빚어 만든 그릇을 도자기라 하는데,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도자기를 중심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도자기 수준은 뛰어났고, 우리 도자기 문화가 일본의 것에 비해 우수했습니다. 그릇의 제작 과정은 흙의 채굴과 초벌구이, 재벌구이 등 구워내는 작업까지입니다. 그릇의 종류는 제작법, 장식법, 형태, 용도 등에 따라 나눕니다. 형태에 따라 그릇은 항아리, 발, 병, 합, 접시 등으로 나눕니다. 그릇 중 항아리인 옹기는 도기 가운데 가장 크고, 질그릇과 오지그릇으로 나눕니다. 우리의 옹기는 호흡을 하므로 발효식품과 곡식을 저장하는 기능으로 세계 제일입니다. 우리 그릇은 식기의 수요가 많았고, 그릇의 모양을 보면 원형이 하늘을 닮았고, 사각형은 땅을 닮아 우주적 사고를 담았습니다.
나전칠기는 전복의 속껍질인 자개를 이용한 공예기법으로 바탕이 되는 기물에 천을 입히고 그 위에 옻을 올려 자개를 박아 만드는 것입니다. 칠은 옻나무의 수액을 말하고, 옻칠에는 생칠과 숙칠이 있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칠공예는 중국에서 성행한 기법을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칠기는 생활에 쓰이긴 하지만 본래 고급한 도장이었습니다. 옻칠은 한 번 마르면 불에 타거나 뜨거운 햇볕을 계속 받지 않는 한 수천 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침투력이 강해 쉽게 벗겨지지 않고, 방수효과도 있습니다.
화각은 쇠뿔의 맑은 부분을 펴서 투명한 종잇장처럼 깎고, 그 이면에 광물석 채색인 석책의 그림이나 무리를 그려 나무로 된 공예품 위에 덧붙여 화려하게 꾸미는 것입니다. 화각은 한중일 3국 중 우리의 고유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목공예품인데, 나전칠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룹니다.
한국의 목공예는 기능 위주의 제품이 많았는데,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한국의 목공예는 조선시대 후기 것으로 제한을 받습니다. 이는 장, 궤, 함, 문갑, 뒤주, 사방탁자, 서안, 연상, 필통, 식기, 찬합, 소반 등 다양합니다.
우리나라는 죽제품의 사용이 일상생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장과 농에서부터 문방구에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다양했고, 죽세공의 기술도 전국적으로 보편화되었습니다. 한국의 자수에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서민들의 소박한 생활 감정이 배어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자수 역시 대부분 조선 후기의 것들이고, 그 종류는 보자기, 굴레, 노리개, 띠, 방석, 버선, 베갯모, 병풍, 보료, 손수건, 수식, 신, 수저집, 안경집, 주머니, 활옷, 흉배 등으로 매우 많습니다. 이처럼 자수는 여성생활의 일부가 되다시피 하면서 다채로워졌고, 옷과 몸치레의 복식자수품이 많았습니다. 보자기는 실용적이고 미적이며 강보, 책보, 보따리, 명정보 등으로 포용과 배려의 문화적 상징을 담아 한국인의 삶과 함께 하였습니다.
한지는 600년경에 처음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삼국시대 이후 한지 제작에서 우리는 중국의 제지법과 달리 긴 섬유를 두드려 균일하게 만드는 방법을 독창적으로 개발했습니다. 알칼리성의 전통잿물로 표백하고, 닥풀을 접착제로 써서 만든 한지의 특성은 우리 민족성처럼 질기고 부드럽고 깨끗합니다. 한지는 용도에 따라 창호지, 복사지, 화선지, 태지 등으로 다르게 불렸습니다. 오늘날에도 한지는 회화의 재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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