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많이 힘드시죠?
힘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받는 저와 여러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용 요약을 이어서 해보겠습니다.
2. 하나님의 눈물_형벌이 축복으로
-생기를 흘려보내라(창2:4~17)
생령이 된다는 것은 구속사의 주인공이라는 의미입니다. 구속의 계보는 믿지 않는 내 주변 사람들이 날 위해서 수고함으로 함께 기록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문제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구속의 문제로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고귀한 인간을 가장 흔한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돈, 권세, 명예를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다 티끌로 지음 받아 별 인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환경에 순종하고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생령이 된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옳고 그름과 잘잘못을 따지면서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 때문에 구원이 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약속을 믿고, 나의 상처를 빛 된 자리로 가지고 나와서 나와 다른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돕는 배필(창2:18~25)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돕는 배필을 주십니다. 돕는 배필은 선악과를 따 먹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 모든 문제를 구원의 문제로 보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의 힘든 사건에 이름을 짓는 사람에게 돕는 배필을 주십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돕는 배필을 주시는데, 첫째, 세상 조건이 보이지 않게 깊이 잠들게 하십니다.
둘째, 갈빗대를 주고받는 아픔이 있게 하십니다. 셋째, 돕는 배필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오십니다. 넷째, 돕는 배필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돕는 배필이 되기 위한 결혼의 원리를 보여주십니다. 우선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특별히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연합해야 하고, 둘이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인격의 가면을 벗고, 배우자의 수치를 돕는 배필로서 정죄하지 않고, 내가 강한 자가 되어 연약한 배우자를 일으키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타락은 달콤하게 다가온다(창3:1~8)
사탄의 유혹으로 타락이 일어나는데, 사탄은 정체를 들어내지 않고, 간교함으로 오며 약점을 공격합니다. 사탄은 점진적으로 말씀을 훼방하는데, 내 욕심에 도장 찍어 주는 말이 사탄의 유혹임을 깨달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때 그런 사건을 당했기에 지금 이 모양이다"라면서 신세 한탄을 하지 말고, 선악이 아닌 구원의 관점으로 정확한 분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탄의 정면 도전에 넘어짐으로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의 선택은 결국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배필을 탓할 수 없고, 그 집의 중심, 세대주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날 바람이 불 때 더 깊은 곳으로 숨지 말고, 하나님의 소리에 반응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보고 들으며 구체적인 적용과 공동체의 나눔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창3:8~13)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배로, 소그룹 모임으로, 섬김의 자리로 부르실 때 내가 숨어 피하지 말고, 또 옳고 그름을 떠나 먼저 말씀을 들은 사람으로서 내가 먼저 사과하고 회개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은 변명을 하는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명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타락이 이어지게 되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또 다른 유혹이 찾아옵니다. 타락한 인간은 책임을 전가합니다. 우리가 모두 거짓 아비 마귀에게서 났기에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거짓말의 행전이 시작됩니다. 내가 죄를 지으면서도 다른 것으로 책임 전가를 하지 않고, 내 죄를 보고 회개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대안을 가지고 계십니다. 타락의 현장에 있는 나를 찾아오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셔서 말씀으로 나를 양육하십니다. 그래서 죄의식으로 숨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해 나아가야 합니다.
-축복은 벌을 통해 온다(창3:14~24)
하나님께서는 먼저 뱀에게 저주의 벌을 내리셨습니다. 사탄은 완전히 패배할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십자가에서 결박당했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완전히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완전히 죽지는 않았기에 우리는 지금도 으르렁거리는 사탄과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또 고난이 저주가 아니라 예수님 없이 잘되는 것이 저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대안을 주시는데, "여자의 후손" 즉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 이래로 여자의 가장 큰 역할은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자녀를 낳는 것입니다. 여자와 남자에게 축복의 벌을 주시는데, 타락하고 나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고통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저주라 생각하지 않고, 벌로 잘 받을 때에 축복이 옵니다. 결혼 생활은 고통과 수고뿐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남편과 아내의 원리에 순종할 때, 자녀들이 부모를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원죄의 형벌이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잘 받아야 합니다. 중심을 잡으면서 잘 참다 보면 나의 인내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에 오십니다. 내가 먼저 돕는 자가 되어 남을 섬기고 약한 사람을 섬기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발꿈치가 상하는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이 최고의 면류관이 됩니다. 남자에게는 노동을 형벌로 주셨는데, 그것 때문에 내가 깨어져서 다른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면 직장 생활에서도 집중하게 되어, 벌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수고의 형벌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해 주는 축복의 벌이 됩니다. 벌을 주신 목적은 영적 후손을 낳기 위해서입니다. 아담이 양육을 잘 받고 나니 아내를 산 자의 어머니 하와라고 부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고난을 통해 내가 영적 후손을 낳고자 애쓰면 하나님께서 직접 가죽옷을 입혀 주십니다. 그동안은 무화가나무 잎으로 수치를 가렸지만, 내 고난과 수치를 통해 전도하기로 결정하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셔서 완벽하게 수치를 가려 주십니다. 어떤 간증을 해도 수치스럽지 않은 인생이 됩니다. 그리고 원죄로 더러운 육은 이 땅에서 형벌을 받고 흙으로 돌아가야 하고, 영이 천국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_다시 사랑
-죄를 다스리며 승리하는 삶(창4:1~7)
세상에서의 실험(1971년의 스탠포드 대학의 짐바르도 교수의 실험)도 이렇게 인간이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죄인이기에 그 후손인 우리도 백 퍼센트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는 "여호와의 도움"으로라는 뜻입니다. 하와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했다고, 오직 내 고통을 다스릴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시적으로 무언가를 받으면 무척 기쁘지만, 근본적인 회개 없이는 고통과 수고의 세상을 살면서 곧 허무해집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때 죄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심사를 받을 때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가인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습니다. 예배는 성령의 열매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복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지식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데 존재의 의미도 모르고 예배의 행위만 나타내려고 하기에 주님이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둘째, 아벨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이 차이는 제물의 종류가 아니라 가장 큰 정성으로, 부드러운 마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씻지 않는, 즉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양육해 주셔도 선택은 나의 몫입니다. 내가 회개하고 드러내기로 작정하면 하나님이 기쁘게 "오라!" 하십니다. 또 먼저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로 말미암아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때가 이루어야 거두기 때문에 알아주지 않는다고 분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인의 표(창4:8~15)
살인보다 더 큰 죄는 회개하지 않는 죄입니다. 가인은 빗나간 예배로 살인을 범합니다. 돈이 없어서 인류 최초의 살인이 난 것이 아니고, 빗나간 예배 때문에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시간과 재물과 감정, 그리고 정성을 들여서 예배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빗나간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직통계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아무렇게나 이야기하고 계획적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어도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자기중심적인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기 자신에만 관심이 있을 때에 잘못된 예배가 행해집니다. '내가 알게 뭐냐. 내가 아내, 부모를 지키는 자냐' 하면서 싫은 사람과는 함께 있기 싫어하며 말 통하는 사람만 교제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가인을 사랑하시기에 저주를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회개를 기다리시며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아벨을 죽였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끝없는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비교하고 분노하고 남의 것을 탐하는 죄가 있다면 자존심을 지키느라 회개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가인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하고 남 탓을 하며 억울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회개의 기회를 저버리고 피하는 인생을 선택하지 맙시다. 그래도 하나님은 가인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회개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죄지은 사람을 흉보고 미워하고 욕하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벌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아벨의 핏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듯이, 나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가인처럼 돌이킬 수 없는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아벨과 같은 죽어지고 썩어지는 밀알의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순종하다 죽으면 순교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16~26)
세상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인의 후손은 곧 세상인데, 이들의 특징은 첫째로 가인의 후손은 여호와 앞을 떠났습니다. 둘째로 가인의 후손은 자식에게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가인의 후손은 성적으로 문란합니다. 넷째로 라멕의 화려한 불신앙의 문명을 만들어 갑니다. 다섯째로 라멕이 이 모든 부유함을 가지고 칼의 노래를 부릅니다. '다른 씨'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데,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모든 죽은 환경에서 다른 씨가 옵니다. 그래서 그 환경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씨,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을 낳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셋의 아들인 에노스는 그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신앙고백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죽은 것 같은 환경에서 '셋'이라는 다른 씨를 주십니다. 가인도 아벨도 아닌, 돈도 못 벌고 내놓을 것 하나 없는 그런 사람을 구속사의 주인공으로 쓰십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환경 속에서 늘 나의 연약함만 부르짖으며 처절한 부패를 회개하는 에노스입니다. 그럴 때에 내 곁의 사람들이 나 때문에 여호와를 부르는 인생이 되게 합니다.
-구속사의 계보를 잇는 인생(창5:1~32)
세상적으로는 단순하고, 영적으로는 깊은 삶을 사는 사람이 구속사의 계보에 올라갑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에덴 동편 놋 땅에서 화려한 문명을 구가하며 분주한 삶을 살았지만, 구속사 계보의 후손은 '낳고 죽었더라'로 설명되는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악하고 더러운 것이 많았지만,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지만, 점점 세상을 걸러내고 하나님만 남는 것이 구속사의 계보입니다. 구속사의 계보에 오르려면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할라크"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 주님과 같이 걷는 것입니다. 가인의 7대손 라멕과 셋의 7대손 에녹은 너무나 정확하게 삶의 행로가 갈립니다. 바로 칼의 노래를 부르는 것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당대에서는 너무나 힘듭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다 물리치면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렇게 산 에녹에게 무슨 상을 주셨을까요? 에녹은 단명의 상을 받았습니다. "에녹아 너는 그 정도 했으면 패스다"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안 있어도, 천국에 빨리 데려가도 되겠다'하고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인내하는 사람이 구속사의 계보에 올라갑니다. 내 죄를 인정하는 사람이 인내할 수 있습니다. 가인과는 달리 구속사의 계보에 올라간 라멕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어도 하나님이 안위의 아들을 주시리라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위로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가인의 7대손에도 라멕이 있고, 아담의 10대손에도 라멕이 있습니다. 둘 다 '강한 자'라는 뜻의 동명이인이지만, 가인의 후손 라멕이 두 아내를 끼고 칼의 노래를 불렀던 반면에 아담의 후손 라멕은 조상의 저주를 오픈하면서 지금의 힘든 삶이 자신의 결론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안위자를 기다립니다. 누가 참 강한 자입니까? 아담의 후손 라멕이 진정으로 강한 자입니다. 안위하는 아들 노아가 500세 된 후에야 자녀를 낳은 경우를 보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래 참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영적 진실성의 결과는 인내인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인내를 가르쳐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으면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안식이고 쉼이 될 것입니다. 내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할 기도제목이 있다면 구속사를 보면서 내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조급하게 시간을 보내지 맙시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 믿는 것이 최고라고 고백하며 기쁨과 감사로 인내의 시간을 보냅시다.
이제 간략히 느낀 점을 써보겠습니다. 저는 이전에 창세기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다루는 책이고, 선민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했지, 창세기와 저의 삶과의 연관성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창세기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저의 믿음 생활을 다루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빛의 생각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인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기쁩니다. 나의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지고, 저의 지난날의 아픔과 고난들이 구속사적으로 해석이 되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혼돈과 공허, 흑암과 같은 어떤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의 삶을 해석할 것을 생각하며 소망과 기대가 차오릅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제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잘 인내하고, 예수님 잘 믿고, 저의 죄를 잘 회개하며 영적 후손을 잘 낳고, 길러야겠다는 꿈과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 꿈을 이루어가는 저의 인생되기를 소망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드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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